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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곡가들의 잇단 표절 의혹에 전 국민이 들고일어났다.
사실 국민이 들고일어났다기보다 언론이 좋은 먹이를 물었다.
누군가의 소유물을 빼앗는다는 것은 통념적으로도 위험한 행위처럼 느껴진다.
작곡자들의 표절이 비난받는 이유다.
최초로 만들어진 무엇에 대한 절도라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표절 의혹에 휘말린 많은 작곡자들의 입장을 대변할 생각은 없다.
어쨌거나 그들도 좋은 의도만 있었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고 능력의 부족을 다른 방법으로 메꿔버리려는 얄팍함도 전혀 없었다고 얘기할 수 없을 테니 말이다.

그런데 그 최초라는 것이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다.
발명가든 작곡가든 뭐 어떤 과학자가 되었든 간에 정말 순수하게 태생적 천재성으로 창조에 이른 사람 혹은 생각이 얼마나 될까.
짐작컨대 하나도 없지 않을까?
그 최초라는 것. 결국 원시인들 수준이나 혹은 아담의 옆동네에서 울리는 북소리 수준까지 올라가야
"아 이것은 창조적인 최초의 것이다"라고 할 수 있는 것 아닐까.

표절에 대한 경멸을 불러온 경제적 권리에 대한 패러다임의 구성과 그 구성에 바탕이 되어준 지적재산권에 대한 역사를 좀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 지적재산권에 묶인 지식의 소유 혹은 최초의 생산 그리고 그 권리의 귀속의 문제는 대중이 알고 있는 그런 무엇을 닮거나 비슷하거나 유래되었거나 최초를 향한 감사에 이르고자 하는 순수함과는 조금 다른 문제다. 그리고 그런 지적 소유를 정작 주장해야 하는 혹은 하는 것이 당연한 권리의 수혜자들은, 폭풍같이 휩쓸리고 나가떨어져가는 대중이 아니라 좀더 실질스러운 지식과 그럴듯한 권력을 가진 소수에 해당하는 얘기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대중이 몸소 앞장서서 큰 칼을 들고 표절을 응징하고 지적 재산권을 수호하며 창조라고 만들어진 최초인 것처럼 보이는 것들에 대한 한없는 찬사를 보내 마지않는다.
그 손에는 길보드 차트에서 흘러나온 복제 테잎들이 들려 있었고, 라이센스 없는 운영체제가 집집마다 깔려있었고, MP3플레이어가 마치 천부의 권리인양 수백 곡의 이를테면 창조물들을 아무 죄책감 없이 가방에 넣고 다녔던 이를테면 적발되지 않은 전과를 뒤집어쓴 이들이다.
아 비난하려는 것 아니다.
잠재적이거나 단지 발각되지 않은 범죄자임을 지적하고 싶은 것도 당연히 아니다.
오히려 그것이 자연스럽고 더 나은 창조와 더 많은 다양성과 더 바람직한 미래를 만들어 갈 것이라는데 강한 지지를 보낸다.

다시 생각해 보자.
지금 듣고 있는 아름다운 음악이 문득 어디서 들어본 듯하다 하여 누군가를 십자가에 못박고 싶어지는 건 아니잖아?
지식의 편중과 독점, 마치 자신이 신인양 창조물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는 이들이 제발 그들의 속에서는 한 점의 창조물도 없었음을 알아줬으면 한다.
이제는 사라져 가지만 한 강대국 중심의 권력구조가 제발 이젠 파편화되어 더 다양한 사고의 분화를 가져오길 바라는 마음이다.

이제는 수많은 모방, 수많은 복제 속에서 어쩌면 돌연변이처럼 온갖 시간 온갖 곳에서 후계되는 단 한 점만 다른 더 나은 것이 이 세상을 더 다양하고 행복한 것으로 만들어가리라는 것에 손을 들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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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루오줌 풀
국내도서
저자 : 김남구
출판 : 시문학사 2004.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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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neodal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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