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움푹 패인 덕수궁 고목은 멀쩡한 놈과는 달리 지켜보는 사람을 가슴 아프게 한다.
살 만큼 살아서 더 어찌해 보겠다는 마음도 없으련만 사람이 더 보고 싶은 마음에 수명을 더 연장하고 있는 것이 이내 싫었을 수도 있었을 듯하다.
몸이 무겁고 가슴 중간이 푹 파여 서 있는 것조차 부끄러울 수도 있었겠지만, 사실 옆에는 그 못지않은 오래된 나무들이 의지되어 여태껏 버티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조금만 둘러볼라 치면 몸 안쪽을 시커먼 시멘트로 가득 채워 허리를 간신히 붙들어 놓은 녀석도 있어서 그나마 제 나무로 제 몸을 이루고 있는 이 고목은 그보다야 덜할 수도 있을 법도 하다
비가 촉촉이 내리고 잘 가꾼 톱밥이 덮은 황토 위로 양분이 오를 때 즈음엔 조선시대 내내 지나온 세월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갈 것이고 어쩌다 지나간 무사들, 궁녀들, 가끔은 왕의 목소리도 들었을 테니 과연 평범한 삶은 아니었을 터다.
지금은 서울 팍팍함에 휘둘려 간신히 산책길을 나선 어느 프로그래머의 곁을 지키는 조경수의 역할이 기가 찰 수도 있겠다
반응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