옳고 그름을 판단할 때 나를 중심으로 하여서는 안된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으니 하나님을 의식하는 생활을 하여야 한다.
십자가는 간단한 상징처럼 보이지만 십자가를 통해 예수를 보고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발견하는 기회가 된다면, 나는 어떤 모습이 되고 어떻게 하나님을 알아야 하는지를 내포하고 있다.
6장 1절 : 6장 전체를 나타네는 주제가 된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창조하시고 심히 좋아하셨다. 우리는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인정해야 한다.
우리가 구제하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구제와 은혜에 다한 증거일 뿐이다. 구제는 우리 안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은혜로 구원하셨으므로 그 증거로 우리가 어려운 이를 돕는 것이다.
구제에서 우리가 드러나면 하나님으로 인한 구제가 아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으시도록 사람에게 자랑하지 말고 사람을 의식하지 않아야 한다.
금식을 통해 나의 의가 드러나서는 안된다.
일주일에 한 번씩 금식하는 것을 자랑해서는 하나님의 영광이 될 리가 없다. 금식하는 것으로 사람을 의식하면 하나님의 자리를 내어 드릴 수 없다. 사람을 의식하지 말고 하나님만 의식하며 금식해야 한다.
이사야 58장 6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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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 진실한 금식을 하여야 한다.
금식은 하나님 앞에서 다급해야 한다.
다급하지 않으니 주변의 사람이 보이고 사람에게 자랑 키 위해 금식을 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내가 금식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일들이 나와 아무 상관이 없는 일이 된다.
예수 닮기에 미쳐가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이다. 예수님처럼 생각하고, 예수님처럼 말하고, 예수님처럼 행동해야 한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 수많은 병자를 앞에서, 바리새인들 앞에서, 하나님 앞에서 어떤 심정을 가지셨는지 성경에 있다. 예수님의 심정을 이해해야 한다.
행위의 가부를 예수님의 겉모습만 보아서는 안된다. 그때 그 당시 그 순간에 예수님께서 가지셨던 심정과 생각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하나님의 생각과 마음을 아는 것이 여느 귀신들처럼 정신없이 혼미한 상태에 이르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인격적인 분이다.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알지 못하고 사람의 의를 찾으면 잘못된 길로 가게 된다.
하나님의 뜻과 상관이 있는 길로 가야 한다.
크리스마스는 크리스(그리스도)+마스(예배)이다. 하나님께 감사하는 예배로 알아야 한다.
사람들은 크리스마스를 영어 필기체로 알고 그 뒤에서 산타할아버지가 콜라 마시는 장면으로 생각한다.
세상의 크리스마스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축제가 아니다. 크리스마스는 세속적으로 즐기는 날이 되어서는 안 된다.
크리스마스의 기준이 된 25일은 이집트의 동짓날이다. 이제 농사짓기에 좋은 날이 다가오는 태양절이라는 뜻이다. 이후 로마에서 기독교가 공인되면서 25일이 태양절이 아니라 성탄절로 지내기로 했다.
사람이 만들었다고 해서 무시하자는 얘기가 아니라 그날은 하나님의 절기로 지키기로 한 사람의 의지였다.
또한, 오늘날에는 크리스마스가 산타 날이 되었지만 산타는 사실 가톨릭 신부가 추워지기 시작한 날에 굶고 춥고 배고픈 이들을 구제한 행동이 자본과 물질에 결합되면서 착한 어린이에게 선물 주는 날로 변질되었다.
타락과 변질이 본질을 흐리게 해서는 안된다.
로마서 1장 21절~25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준하게 되어 썩어질 사람(산타)과 금수(루돌프)와 버려질 형상(코카콜라)의 우상으로 바뀌었다.
기도해야 하는 하나님의 뜻, 구제하여야 하는 하나님의 뜻, 금식해야 하는 하나님의 뜻을 의식하고 생각해야 한다.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는 행위가 의로울 수가 없다.
내가 그렇게 되지 않도록 주심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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