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지자 이사야의 책에 쓴 바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모든 골짜기가 메워지고 모든 산과 작은 산이 낮아지고 굽은 것이 곧아지고 험한 길이 평탄하여질 것이요 모든 육체가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보리라 함과 같으니라
안나스와 가야바가 대제사장으로 있을 때에 하나님의 말씀이 빈 들에서 사가랴의 아들 요한에게 임한지라
성경은 말씀을 들려주실때 같은 방법을 사용한다
"누구에게 임한지라"
듣지 않으려는 사람은 들을 수 없기 때문이다
광야의 기적이 있었지만 기적을 보라고 하시지는 않는다
우리는 계속 보고 있었지만 하나님은 들으라고 말씀하신다
들어야 신앙이 성장하기 때문이다
아이가 자라며 심령이 강하여지며 이스라엘에게 나타나는 날까지 빈 들에 있으니라
빈 들은 광야이고 넓은 들판이다
텅 빈 공간이다
사람이 찾지 않고 오래 머물 수 없는 곳이다
단절과 부족이다
채워도 남지 않는 곳이다
가나안의 풍요를 만났을 때도 이스라엘의 원망과 결핍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지금의 시대는 더 화려하고 편하지만 더 원망하고 결핍하다
따라서 눈에 보이는 것이 결정적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다
들리는 것이 우리 인생을 결정한다
성경은 강조하기를 하나님은 수많은 것을 보여주시지만, 하나님은 우리로 들으라고 말씀하신다
들려지는 은혜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모든 것은 지나가면 옛것이 된다
눈에 보이는 것은 잠깐이다
영원한 것은 보이지 않는다
귀에 들리는 것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귀에 들리는 것이 언어적인 것이 우리 인생에 크게 작용한다
부모님을 기억할때는 부모님의 언어가 기억이 난다
우리가 무엇을 결정할 때는 보이는 것이 아니라 들려지는 것으로 결정한다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빈 들은 기도하는 장소다
빈 들은 유혹의 장소다
하지만 우리에겐 빈 들이 채워지고 유혹을 이기는 장소가 된다
성장하는 장소다
내 안의 연약함이 계속해서 자라는 장소다
우리 안의 심령이 하나님으로 인해 살아나는 장소다
우리는 빈 들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이 있어야 우리가 성장한다
아멘
우리는 들어야 하나님을 이해한다
우리가 삶을 사는 것은 어렵다. 구별되는 삶을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삶을 살아가며 하나님에 대한 여러 고민이 있었고 우리 선배들도 그리했다
여호와여 내가 부르짖어도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니 어느 때까지리이까 내가 강포로 말미암아 외쳐도 주께서 구원하지 아니하시나이다 어찌하여 내게 죄악을 보게 하시며 패역을 눈으로 보게 하시나이까 겁탈과 강포가 내 앞에 있고 변론과 분쟁이 일어났나이다
하박국이 볼 때 악인이 망하는 법이 없다
악인들이 더 잘되고 성장한다
하나님이 살아계시면 일어날 수 없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자꾸 일어난다
그래서 하박국처럼 "구별되게 사는 것"에 의문이 생긴다
그럴수록 하나님에 초점을 맞추어야한다
하박국이 그러했다
사람은 몰입이 있어야 즐겁다.
가슴 뛰고 재미있는 일이 있다면 그 대상으로 인해 즐겁다.
가끔 과몰입이 문제가 된다.
음식을 좋아하나 너무 많이 먹는 것이 문제가 된다.
우리에겐 일을 많이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일 밖에 할 수 없는 것이 문제가 된다.
하나의 일 밖에 할 수 없을 때 중독이 일어나고 과몰입이 된다.
우리가 세상일에 대해 과몰입을 할 때가 있고 그 때는 우리가 피폐해진다
우리는 하나님께 몰입해야한다
세상을 움직이는 하나님의 지혜에 몰입해야한다
안나스와 가야바가 대제사장으로 있을 때에 하나님의 말씀이 빈 들에서 사가랴의 아들 요한에게 임한지라
"임한지라"
하나님이 요한에게 찾아 오시다
하나님이 왜 나를 부르시고 이 불편한 자리에서 살아가야 하는지 말씀주시다
그래서 구별된 삶으로 살아가게 하시다
하나님을 믿는 인생은 손해보는 인생이 없다
당당히 광야에서 살아가게 하시다
아멘
세례요한은 예수님의 만남을 30년 준비했다
30년간 광야에 있었다
세레요한은 예수님에 관한 전문가다
한 이야기만 30년을 들었다
메뚜기와 석청을 먹었다
30년간 광야에 어떻게 있었을까
자유했기 때문이다
불편한 자리고 불편한 옷이지만 자유한 인생이었기 때문이다
마음의 불편을 잠재울 수 있는 이유가 있는 인생이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믿음이 흔들릴때는 내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이 다를 때다
우리가 근심걱정이 올 때 믿음이 흔들린다
형식적인 예배에서 믿음이 흔들린다
예배를 드리고 있는 이 순간 내 믿음이 흔들리고 있지 않은가 돌아보아야 한다
세례요한은 30년을 준비했는데도 믿음이 흔들렸다
예수님을 만나고 세례요한은 흔들렸다
그들이 예수께 나아가 이르되 세례 요한이 우리를 보내어 당신께 여쭈어 보라고 하기를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하더이다 하니
"당신 이오이까.."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까.."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이라고 하고도 감옥에서 믿음이 흔들렸다.
감옥에서 곰곰히 생각하니 믿음이 흔들렸다.
이상하지만 이것이 정상이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의심했다. 반대길로 갈 뻔 했다.
모세도 할 수 없다고 했다. 기분대로 돌로 때렸다.
기드온은 하나님이 보여주셔도 절대 못한다고 했다.
완벽한 사람은 없다.
우리도 같다.
하지만 그들이 우리와 다른 점은 그들이 흔들린 믿음에 머무르지 않고 넘어갔다.
어떻게 넘어갔을까.
타이어가 펑크나면 어찌하면 될까.
고무는 고무에 붙여야한다.
옷이 헤어지면 같은 천으로 붙여야한다.
믿음이 펑크나면 믿음으로 붙여야한다.
믿음을 이성으로 붙이니 문제가 된다.
믿음은 믿음으로 채워야 치유가 일어난다.
귀로 들려지는 보이지 않는 세상이 보이기 시작한다.
믿음의 자리가 어디에 서 있나요
과거로 후퇴하지는 않나요
감옥에서 세례요한이 새로운 세계로 넘어가듯이 우리도 넘어가야한다
하나님의 사람은 들어야한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from 경신교회 (담임:최원근목사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