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영원 전부터 계셨지만 우리에게 빛으로 오심.
예수께서 우리게 온 시간을 비추어 "탄생하시었다"라고 함.
빛이 창조되는 그날 혼돈과 흑암과 공허가 떠나고 창조역사가 시작되었다.
예수께서 우리게 오실때 어둠과 혼돈이 떠나고 우리는 새로운 삶을 살아는 계기가 된다.
예수께서 우리게 참 빛으로 오시면 우리는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음을 이구동성으로 고백하게 되어있다.
영접하는 자 만이 그 역사에 함께하는 것이고,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우리가 어떻게 영접하는지를 첫째날이 가르쳐 주고 있음.
첫째날이 오지 않으면 신앙생활이 길어도 하나님의 눈에 자녀로서 보여지지 않는다.
첫째날이 분명하게 오는 사람이 되어야한다.
창조의 둘째날이 열리면 궁창을 만드시고 하나님이 좋으셨던 날을 빼 놓으심.
둘째날은 십자가의 사건을 계시하고 있음.
인류를 구하기위해 아들을 보내시고 십자가에 죽게 하심으로 우리를 구하시지만 사랑하는 아들의 죽음을 계시하는 둘째날을 하나님이 좋았더라고 말씀하실 수 없으심.
둘때날은 우리에게 영적 삶의 원리를 가르치고 있으며 그것은 성화의 원리이다.
둘째날이 온 사람은 우리의 보잘것없음과 예수께서 나를 위해 죽으심과 내가 예수님과 함께 죽었음을 알게됨.
둘째날이 온 사람을 자신을 구별하고 나누며 성화된 삶을 살아가게 된다.
예수님이 나를 위해 죽었다는 것은 믿는데 내가 예수님과 함께 죽었음을 모르는 사람이 너무 많다. 그래서, 가장 은혜로와야 할 교회가 문제가 많고 씨끄럽게 된다.
창조의 세째날이 열리면 뭍이 드러나게 하시고 바다를 만드시고 보시기에 좋았더라.
메시아이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께서 부활하심을 계시한다.
세째날이 온 사람은 예수와 함께 살기 시작했으므로 사역이 달라짐.
먹든지 마시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구하던지 떠나든지 하나님을 존귀케하고, 살든지 죽든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게 된다.
이런 고백이 있는 사람을 하나님은 드러나게 하시고 모든 분야에서 높이신다.
창조의 네째날이 열리면 해와 달과 별을 만드시고 보시기에 좋았더라.
그 동안엔 공간을 만드셨고 이제 공간(궁창)을 채우기 시작하심.
예수님의 승천과 하나님 우편에 앉으심을 계시함.
넷째날이 온 사람은 각기 자기의 자리에서 사명과 직분으로 일을 하게 됨.
믿음의 자리와 사명을 발견하고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살아가는 시간이 됨.
하나님은 자신의 직분을 지키는 자를 하늘의 해와 별과 같이 드러내심.
창조의 다섯째날이 열리면 물고기와 새를 만드시고 보시기에 좋았더라.
생육하고 번성하는 시기다.
성령이 강림하고 부흥하는 시기다.
다섯째 날이 온 사람은 성령이 충만한 삶을 살아간다.
생명이 확대되고 번성한다.
창조의 여섯째날이 열리면 하늘의 권세와 다스림이 임하다.
다투지 않아도 하늘에서 해결하는 권세가 이른다.
창조의 일곱째 날이 열리면 안식하시다.
모든 것을 마치시고 안식하시다.
복음사역의 영원함을 계시하는 것으로 하나님 나라에서의 평안함에 이르다.
우리는 영원한 하나님나라에서의 안식을 얻게될것이고 구원의 완성에 이르다.
구원은
1. 칭의의 구원 - 이미 구원을 받음. 죄사함 받음.
2. 진행형으로의 구원 - 성화의 과정, 하나님 자녀로서의 성화.
3. 완전한 구원 - 영광스런 구원, 주님의 나라가 이루어짐에 따르는 구원.
일곱째날의 특징은 복을 주시는 날이다.
다섯째 날에는 물고기와 새들에게 복을 주셨고
여섯째날에는 짐승과 사람에게 복을 주셨고
일곱째날에는 하나님이 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그날에 안식하셨음이라.
사람은 일곱째날의 복으로 살아가야한다.
엿새동안 세상에서 열심히 살았을지라도 주일날 하나님 앞에서 오는 그 복으로 살아가야한다.
사람을 엿새의 복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제 칠일의 복으로 살아가야한다.
위로의 복으로 살아가야한다.
엿새동안 아무리 성공해도 제 칠일의 복을 잃어버리면 허무한 인생이 아닐 수 없다.
모든 것을 이룬 솔로몬의 전도서를 통해 고백한 것도 그것이다.
우리는 일곱째날의 복으로 사는 사람이 되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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